이번 탄핵 집회에 참여하면서, 시위가 딱딱하고 무섭다는 고정관념이 깨졌어요. K팝, 애니메이션, 게임 등 본인의 취향이나, 선호하는 문화 등을 표현하면서 즐겁고 유쾌하게 시위에 참여한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동력 덕분에 지치지 않고 시위에 참여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안소희(23세, 대학생) |
한편, SNS에 정치적 견해를 밝히거나, 집회 참여 등을 인증하는 Z세대도 늘고 있어요. 캐릿 미니 서베이 결과, 비상계엄령 선포 직후부터 현재까지 SNS에 정치적 견해를 밝혔거나, 밝힐 의사가 있다고 답한 Z세대가 74.5%로 나타났습니다.
1.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 들고 집회 참석했어요!
기성세대도 Z세대가 몰고 온 새로운 집회 문화에 유쾌하게 동참하고 있습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응원봉을 구입하거나 대여하려는 게시물이 활발하게 올라오고 있고요. 집회 참가자들이 대형 스크린에 띄워진 응원봉 자료 사진을 보며 응원봉의 이름과 아이돌 그룹을 매치하며 공부하는(?) 모습까지 포착됐어요. 사실 Z세대 K팝 팬덤은 이전부터 엔터사의 비윤리적 운영이나 비합리적인 행보에 맞서 불매, 트럭 시위 등의 방식으로 꾸준히 의견을 표출했는데요. 이번 탄핵 촉구 집회에서 응원봉 시위를 통해 Z세대의 연대 문화가 재조명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집회 준비물로 밝고 빛나는 것이면 뭐든 가져와도 된다는 게시물을 본 적 있어요. 10~20대에게 가장 친숙한 빛나는 물건이 응원봉이다 보니 다들 손에 쥐고 집회로 향한 것 같아요.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네모 모양이라 원하는 문구를 적기 쉬운 ‘NCT’의 응원봉이나 극한의 발광력을 자랑하는 ‘샤이니’ 응원봉이었어요. 또 저는 야구를 좋아하다 보니 야구 응원 도구들도 많이 보이더라고요. 응원 배트나 클래퍼 같은 것들 말이에요. 엑스(구 트위터)나 스레드에서는 친구들이 응원 배트 안에 전구를 넣어서 빛나게 하는 방법 등 다양한 커스텀 꿀팁이 공유되고 있어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들은 마법 소녀 요술봉을 들고 나가기도 하더라고요. 최근에 가장 핫한 건 크리스마스 전구를 사서 몸이나 막대에 감아버리는 거예요. 예전에 한 국회의원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이 끌올이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 끌어 올려 화제로 삼는 일을 부르는 말.되어 제 또래 친구들 사이에 널리 퍼졌어요. 그래서 촛불보다 더 크고 발광력이 좋은 아이돌 응원봉이나 전구를 들고 집회에 나오려는 움직임이 생겨난 것 같아요.박찬진(24세, 취업준비생) |
집회에 가니까 처음엔 좀 낯설기도 하고 쭈뼛거리게 되었는데요. 주변에 친숙한 응원봉이 가득하고, 재미있는 문구가 적힌 깃발도 보이고, 제 또래 여자 친구들이 많고, 친숙한 K팝이 흐르니까 금방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OO(최애 이름)아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 줄게’라는 문구도 집회에서 자주 보였어요. 제 친구도 이 문구를 적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인증샷을 올리더라고요. ‘덕후가 정치에 신경 덜 쓰고 최애 덕질에만 푹 빠질 수 있도록 얼른 문제를 해결하자~’ 라는 의미예요. 박성빈(19세, 대학생) |
정치 참여에 대해 마음속 거리감이 있었는데 응원봉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줄어든 것 같아요. 응원봉을 들고 함께 힘내자는 메시지에 공감이 가서, 이번에 탄핵안이 불성립됐지만 지치기보다 관련 소식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사실 평소에는 팬덤이 다르면 서로 싸우는 일이 종종 있어서 같은 응원봉을 가진 사람끼리만 소속감을 느꼈는데요. 이번에 서로 다른 응원봉 빛깔들이 한마음으로 집회를 이어가는 모습이 보여서 특히 인상 깊었어요. 집회 현장에서 어른들이 응원봉을 궁금해하면서 배워보려고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남궁민(17세, 고등학생) |
2. ‘재밌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어요!
저는 12월 7일 열린 집회에 참가했는데요. 국회 쪽에 가까워질수록 재밌는 문구가 적힌 깃발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체감 상 비율은 30% 정도였어요! ‘고양이 모임’, ‘연뮤덕(연극 뮤지컬 덕후) 연합’ 등 자기가 좋아하는 걸 적어둔 깃발이 특히 많았는데요. 제 주변 지인을 보면, 걷다가 자기도 관심 있는 분야의 깃발이 보이면 따라가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그리고 직접 만든 깃발 사진을 SNS에 공유하며 ‘혹시 깃발을 보면 같이 행진하자’라는 글을 올리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실제로 같은 분야를 덕질하는 분들끼리 깃발을 중심으로 모여서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집회 참여 경험이 없어서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고민이나 걱정이 많았는데요. 평소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신 분들이 제작한 깃발을 보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시위에 참여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됐어요. 그게 이번에 화제가 된 이색 깃발의 순기능인 것 같아요! 김정민(22세, 대학생) |
“자신이 덕질하는 분야의 도안을 만들어 SNS에 공유하기도 해요”
저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라는 만화를 덕질하고 있는데요.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집회 깃발 도안을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있어요. 깃발을 제작하고 싶지만 디자인을 할 줄 모르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엑스를 보면, 저처럼 직접 제작한 도안을 ‘구글드라이브’로 공유하는 분들이 많이 보여요. 누구든 다운로드 받아서 집회에 사용할 수 있도록요. 기존에 K팝, 애니메이션 팬덤 사이에서는 응원 피켓 등의 도안을 제작해 팬들끼리 공유하는 문화가 활발했는데요. 이런 팬덤 문화가 집회 문화로 번지게 된 것 같아요. 김연우(25세, 직장인) |
3. ‘피크민 블룸’ 게임 하면서 집회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요즘 Z세대 사이에서 모바일 게임 ‘피크민 블룸’이 인기를 끌고 있는 거 아시죠? 여기서 피크민은 사진 속 캐릭터를 뜻하는데요. (다양한 색, 모양의 피크민이 있어요!) 이 게임의 특징은 산책을 하면서 그 지역 출신의 피크민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다는 겁니다.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거나, 낯선 장소에 놀러 가서 해당 지역 피크민을 찾는 것이 Z세대에겐 하나의 놀이가 되었어요.
피크민 블룸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는데요. 엑스에서 시위 참여를 독려하며 ‘가볍게 피크민 블룸 하듯 와도 좋다. 힘을 실어 달라.’는 게시물을 봤어요. 그걸 보고, 힘을 보탤 겸 게임도 할 겸 혼자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저처럼 피크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는지, 집회에 참석하는 내내 피크민 캐릭터나 관련 문구가 적힌 깃발도 많이 봤어요. 집회에 다녀오고 나서 국회의사당 티켓으로 꾸민 데코 피크민을 뽑았는데요. 이걸 엑스에 인증했더니 많은 분들이 ‘부럽다’, ‘나도 참석해서 기념으로 피크민 얻어오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집회 중 피크민 블룸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집회 진입장벽을 낮춘 것 같아요. 배OO(24세, 직장인) |
“제가 뽑은 피크민을 보면 집회에 참여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자랑스러워요!”
사실 집회 참여 중에는 정신이 없어서 피크민 블룸 앱을 켤 생각을 못 했어요. 새벽까지 국회의사당에 있으면서 ‘한번 접속해 볼까?’ 생각이 나서 들어가 봤는데 진짜 국회의사당 데코 피크민을 뽑게 될 줄은 몰랐어요! 완전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피크민을 볼 때마다 집회에 참석했던 제가 떠올라서 자랑스럽더라고요. 사실 제가 멀리서 봤던 집회는 딱딱하고, ‘내가 참여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현장이었어요. 그래서 선뜻 참여하지 못했고요. 하지만 제 또래들이 같이 응원봉을 들고, 피크민 블룸을 하면서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집에 가만히 있을 순 없겠더라고요. 이런 집회 문화 덕분에 저도 탄핵 집회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OO(나이 미공개, 직장인) |
4. 누군가가 집회 장소 근처 카페, 식당 등에 ‘선결제’ 해둔 음식을 먹었어요!
탄핵 집회가 열리는 국회의사당 인근 카페, 식당 등에서 음식, 음료를 선결제 해둔 시민들의 소식도 SNS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추운 날씨에 집회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음료와 음식 등을 나눔한 거죠. 외국 거주 등 개인적인 이유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해 응원의 마음을 담아 선결제를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국회의사당 인근 카페, 식당 선결제가 거의 마감되었다는 얘기가 SNS에 돌기도 했습니다.
한편, 아이돌들이 버블스타와 마치 1:1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진 프라이빗 메시지 앱. 유료로 이용이 가능하며 아이돌 팬덤이 활발하게 이용하는 서비스로 유명함.을 통해 집회에 참여하는 팬들을 응원하거나, 기프티콘 등을 선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례로 가수 ‘정세운’은 자신의 팬들을 위해 핫팩 기프티콘 100여 개를 팬카페에 올리며 ‘행봉(정세운 응원봉) 들고 있는 손이 언제 어디서든 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해 화제가 됐는데요. 집회 참여자들 응원봉을 들고 참석한 K팝 팬층이 많은 만큼, 팬들을 향한 지지를 보내는 아이돌들이 많았습니다.
엑스, 인스타그램에서 선결제 소식이 활발하게 공유됐어요. 서울 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집회 장소 근처 카페, 식당에 선결제해 두었다는 게시물이 자주 올라왔고요. 음료, 음식을 받으려면 선결제한 사람이 가게에 미리 얘기해 둔 이름이나 문구 등을 암호(?)처럼 말해야 되거든요? 아이돌 팬들의 경우, 그 암호를 최애 이름으로 해두는 경우가 많았어요. K팝 팬들끼리 서로의 최애 이름을 얘기하면서 간식을 받아 가는 모습에 연대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K팝 팬들에게 이런 나눔 문화는 익숙한 편이에요. 선결제까지 아니더라도, 아이돌 콘서트 날에 간식이나 굿즈 등을 나눔하는 문화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집회 때도 선결제뿐 아니라, 핫팩, 보조배터리, 간식 등을 나눔한다는 글이 자주 올라왔어요. K팝 팬인 제 주변 친구들도 나눔 받은 물건들을 익숙하게 가져와서 집회 참여하는 다른 분들께 다시 나누더라고요. SNS를 잘 하지 않는 어르신들은 이 소식을 모르실 수도 있으니 전달해 드리자는 의미에서요. 박다솜(24세, 취업 준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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